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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고통, 이중의 책임: 법·의료·사회적 지원으로 본 알코올·약물 중독

by woori25 2025. 4. 23.

    [ 목차 ]

우리 사회에서 ‘중독’이라는 단어는 주로 개인의 의지 부족 혹은 도덕적 타락을 떠올리게 하지만, 알코올·약물 중독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술이나 약물을 통해 일시적 안도감을 얻는 순간은 개인의 고통을 숨기는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중의 고통이란, 중독에 시달리는 당사자가 겪는 신체적·정신적 고통과 더불어 그를 둘러싼 사회가 부여하는 낙인과 책임을 뜻한다. 우리는 중독자를 처벌할 것인가, 치료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여전히 논쟁 중이며, 이 두 가지 선택지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만 온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이중의 고통, 이중의 책임: 법·의료·사회적 지원으로 본 알코올·약물 중독
이중의 고통, 이중의 책임: 법·의료·사회적 지원으로 본 알코올·약물 중독

 

 

1. 법적 지원 체계: 처벌에서 치료로의 전환

 

한국은 전통적으로 마약류 관리를 ‘단속과 처벌’ 중심으로 운영해 왔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치료보호’ 개념을 도입하며 패러다임 전환을 꾀했다.「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은 중독을 단순 범죄가 아닌 의료적 문제로 규정하여, 투약사범에 대해 처벌 대신 치료명령·치료조건부 기소유예를 허용하고 있다. 이는 약물 중독자에게 징역이나 벌금형을 선고하기 전에 상담·재활프로그램을 우선 제공함으로써 재범 위험을 낮추려는 시도다.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은 알코올·약물 중독자를 정신질환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전국적으로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설치·운영하도록 규정한다. 이를 통해 조기 선별(스크리닝)부터 사례관리, 재활·자조모임, 가족지원에 이르는 통합적 서비스가 법제화되었다.

그러나 법적 제도가 잘 갖춰졌다고 해서 현장이 완벽히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치료보호제도 참여 여부가 재판부의 재량에 크게 의존하며, 중독자 스스로가 처벌을 회피하기 위해 ‘치료받는 자’ 역할을 연기하기도 한다. 또한, 일부 지자체에서는 인력·예산 부족으로 중독관리센터 역할이 미흡한 경우도 적지 않다.

 

2. 의료적 지원 체계: 다학제적 접근과 한계

 

의료계에서는 국립·지방의료원, 민간 종합병원 내 지정 중독클리닉, 알코올중독재활상담센터 등이 알코올·약물 중독자를 위한 치료 인프라를 제공한다. 입원치료는 급성 금단 증상이 심한 경우 입원실에서 의사의 감독 하에 해독 및 약물치료를 받는다. 이후 심리치료·집단치료·가족치료를 병행하는 장기재활단계로 넘어가며, 종종 3~6개월 이상의 장기 입원이 필요하다. 외래치료 및 상담은 병원에 내원해 주기적으로 약물 복용을 점검하고, 임상심리사·사회복지사와의 상담을 통해 재발 방지 전략을 수립한다. 스스로 치료의지를 갖춘 경우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지속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한 자조모임과 가족 프로그램은 알코올익명회나 마약익명회는 중독자 상호간 지지체계를 제공하며, ‘동료 지지’의 힘으로 회복을 돕는다. 가족 프로그램은 중독으로 인한 관계 파탄과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는 가족 구성원에게도 회복의 길을 제시한다.

그러나 의료적 지원 체계는 여전히 다음과 같은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의료비·비급여 부담: 입원 기간이 길어질수록 발생하는 비급여 비용이 개인·가족에게 큰 경제적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문 인력 부족: 임상심리사·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사회복지사 등 다학제 팀 구성은 이상적이나, 지역 병원에서는 인력·장비가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다. 재발률 관리의 어려움: 중독은 만성 질환과 유사해 재발이 잦은 편이다. 의료기관을 떠난 뒤에도 지속적인 관리를 연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취약하다. 

 

3. 사회적 지원 체계: 지역사회와 연대의 힘

 

중독 문제는 가족·지역사회·기업·공공기관 등이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리 사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지원망을 가동 중이다.

-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
전국 광역·기초 자치단체에 설치된 센터는 전문 상담·심리치료·취업지원·자조모임 연계 등 전주기적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례관리 전문가는 중독자의 상태에 따라 맞춤형 개입 계획을 수립하며, 필요 시 의료기관·사회복지기관과의 가교 역할을 수행한다.

- 동료지원가 제도
실제 회복 경험이 있는 동료지원가가 인터벤션, 모임 진행, 가정방문 등을 통해 신뢰를 바탕으로 지원한다. 전문가 중심의 도움에서 벗어나 ‘나도 할 수 있다’는 모델을 제공함으로써 재발 위험을 낮추는 데 기여한다.

- 고용·주거 지원 프로그램
중독으로 직장을 잃거나 주거 불안정에 놓인 이들을 위해 공공 일자리, 지원주택, 직업훈련 프로그램 등이 운영된다. 경제적 안정은 중독 회복의 중요한 토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지원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한 실정이다.

- 예방교육·캠페인
학교·직장·지역사회에서 중독 예방교육을 정규 과정으로 도입하거나 공개 세미나, 홍보물을 통해 경각심을 높인다. 특히 청소년·청년층 대상의 조기 개입은 미래 세대의 중독 부담을 줄이는 핵심 전략이다.

 

4. 이중의 책임을 넘어: 통합적 접근과 과제

 

알코올·약물 중독 문제는 ‘개인의 도덕성’과 ‘사회 구조적 결함’이 만나 빚어진 복합현상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통합적 개입이 요구된다.

- 법·의료·사회 협력의 강화
정부 부처 간 칸막이를 허물고,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를 거점으로 법무부·보건복지부·고용노동부·지자체·NGO가 공동으로 중독자 회복 로드맵을 설계해야 한다.

- 지속가능한 재정 투자
의료비 부담 완화와 사회적 지원 확대를 위해 예산과 인력을 확충하고, 민간 후원·기업 CSR과 연계한 다양하고 유연한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

- 재발 방지를 위한 평생 관리 모델
중독은 재발이 빈번한 만성질환이다. 초기 치료를 마친 이후에도 주기적인 모니터링, 온라인·모바일 기반의 비대면 상담, 동료지원가 네트워크를 통해 평생 관리를 지원해야 한다.

- 낙인 해소와 인권 보장
중독자를 ‘범죄자’나 ‘사회적 골칫거리’로 보는 시각을 버리고, 회복 가능한 ‘환자’로 인정해야 한다. 언론·교육·캠페인을 통해 편견을 줄이고, 사회적 자산으로서 회복자를 지원하는 문화를 조성해야 한다.

 

알코올·약물 중독자는 이중의 고통과 신체적·정신적 아픔과 사회적 낙인을 감내하며, 동시에 이중의 책임과 자기 관리 책임과 사회적 돌봄 책임을 묻는 세상에 살고 있다. 법적 처벌과 의료적 개입, 그리고 사회적 지원망은 각각 중독 문제 해결의 한 축이지만, 이들을 따로 떼어놓고 운영해서는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원스톱 통합 지원 체계’를 마련해, 중독자가 필요한 서비스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연속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법·의료·사회가 유기적으로 엮여 있을 때만이, 중독자 스스로가 과거의 상처를 딛고 건강한 삶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역시 안전망을 구축함으로써 중독으로 인한 개인·가족·공동체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오늘도 어느 곳에서는 술잔을 기울이거나 약물에 손을 내미는 누군가가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세지고 강한 법’이 아니라, ‘따뜻하고 촘촘한 손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중독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작은 관심과 실천으로 함께 나아가기를 바란다.